최북은 가문이나 출신은 물론 생년. 몰년도 명확하지 않고, 한양의
객사에서 세상을 마친 때가 49세였다 그의 첫 이름은 식(埴)이고 자는
성기(聖器),유용(有用)을 사용했고 호는 호생관(毫生館), 삼기재(三奇齋),
거기재(居其齋) 등 이었지만 호생관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.
최북과 친분이 있는 화가에는 김홍도, 김득신, 이인문 등이 있었지만,
그의 화풍은 이들화가들과 아주 동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. 수직(垂直)
표현의 과장이나 때로는 밀도가 없는 무기력한 묘사를 보여주지만, 대체로
자유분방한 필치로 야성적인 취향이 깃든 작품이 많다. 그는 한 쪽 눈을
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물론이고 어떤 일에도 틀에 얽매이는
기행(奇行)과 주벽이 있었던 사람이었다. 작품으로는 <금강산 표훈사도>,
<조어산수>, <초옥산수도> 등이 있다.